
보도자료
[기획] 아파트 고독사 느는데 위기가구 대책은 없다?
한국아파트신문 2023.10.30. 입력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 기획] ‘아파트 위기가구’를 찾아라
최근 5년간 고독사 22% 3318명이 아파트서 발생
소장 66% “단지 내 위기가구 발굴・지원 인력 필요”
전문가 “고립가구 발견 위한 예방정책 당장 마련을”

6월 오언석 서울 도봉구청장(왼쪽)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위촉장을 수여했다.
[출처:서울 도봉구청]
“앞으로 생활고로 인한 극단적 선택, 고독사 등 외로운 죽음이 주로 발생하는 곳은 바로 아파트가 될 것이 뻔하다.”
유품정리회사 키퍼스코리아의 대표로 고독사 관련 전문강사로 뛰고 있는 김석중 씨는 “최근 1기 신도시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 내 고독사 예방 교육 및 자문 요청이 늘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김 대표는 “젊을 때부터 아파트에 거주한 중장년층과 노년,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거주한 청년층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주로 아파트에서 살아왔고 아파트밖에 모르는 아파트족’은 결국 아파트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다. 김 대표는 “이런 문제에 뒤늦게 대응하지 않으려면 당장 아파트에 대한 위기가구 발굴, 고독사 예방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아파트에서 가족 전체가 생활고를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고독사하는 사례가 적잖게 발견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위기가구·사회적 고립가구 정책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2017~2021년 5년간 고독사 사례 15066명 중 아파트 고독사는 3318명으로 22%를 차지한다.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빌라 등 주택(8680명, 58%) 다음으로 많다.
정부는 위기가구 발굴에 민간의 참여를 확대했다. 2018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증평 모녀 사망 사건’ 이후 나타난 변화다.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도 이때 생겨났다. 하지만 아파트는 정책 대상에서 빠져 있다. 그저 관리사무소장과 입주자대표회의의 참여를 독려할 뿐이다.
복지 사각지대 발굴 어떻게?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지역 내 사회복지 대상을 발굴해 상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통합사례관리 사업을 펼친다. 위기가구 및 사회적 고립가구 발굴을 위해 민관 복지관계자, 주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운영한다. 또 아파트 소장, 경비원, 우체국 집배원, 검침원 등 평소 주민과의 접촉이 많고 방문이 가능한 생활업종 종사자들로 구성된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역별 주택관리사단체와 협약을 맺고 소장의 명예사회복지공무원 참여를 확대해가고 있다. 이들은 복지지원 제도를 모르거나 실거주지가 달라 복지 사각이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징후, 위기가구 사례 등을 발견해 지자체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지역사회보장협의체는 약 9만9000명, 명예사회복지공무원은 약 24만4000명이 등록돼 있다.
정부는 5월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사회적 고립 예방·지원센터’를 설치해 매년 실태조사를 통해 고위험군을 찾아낸 뒤 생애주기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임종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첫걸음은 사회적 고립가구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파트 입대의, 이·통·반장 등 지역 주민과 부동산중개업소 등을 활용하려고 한다. 이들을 고독사 예방 게이트키퍼(우리마을지킴이)로 지정·양성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에게는 봉사활동 시간 인정이나 포상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해 다세대 주택이나 고시원 밀집 지역 등에 공동체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이웃과의 유대감을 높이려는 구상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위기가구를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지금까지는 단전·단수, 건보료 체납, 금융 연체 등 34종 위기 정보를 활용했다. 여기에 요양급여 장기 미신청, 주민등록 세대원, 고용위기 정보, 수도요금 체납정보 등 10종의 정보를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발굴 기준도 개인 단위에서 세대 단위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소장 “아파트에 맞는 정책 필요해”
위기가구는 위기에 빠진 사람이 자발적으로 신청하면 찾아내기 쉽다.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위기가구가 전기·가스요금을 체납하는 경우 주변의 관심이 주어지면 발견될 수도 있다. 이럴 때 일반 주택은 집배원, 전기검침원 등이 방문하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파트는 이와 달리 관리직원을 제외한 생활업종 종사자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개별사용료가 관리비에 함께 부과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에서는 3개월 이상 관리비가 체납되는 정도가 돼야 관리사무소가 ‘특정 세대가 경제적 문제를 겪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보가 10월 주택관리사 1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67명(66%)는 아파트의 위기가구 발굴 및 지원을 위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혼자 사는 세대가 늘어난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관리비 체납 세대가 늘고 있다”, “위기가구를 조기에 발굴해 제대로 조치를 하려면 전문 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주택관리사들은 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와 관리사무소의 연계를 강화(35%)’하거나 ‘명예사회복지공무원 등에 일정 보수를 지급(26%)’해 위기가구 발굴을 독려하고 ‘별도 인력을 양성(21%)’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미 법적 업무 부담이 큰 주택관리사들이 위기가구 발굴 업무까지 맡아줄 수 있을까. 일부는 ‘지원제도가 미흡한 상황에서 현재도 인력이 부족한 관리사무소는 움직이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또 일부 응답자는 ‘행정기관에서 인력을 지원하면 관리사무소도 협조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입주민들과 가장 밀접한 곳이 바로 관리사무소”라고 협조 이유를 설명했다.
“아파트 위기가구 더욱 증가 전망”
2020년 1~2인 가구 비율이 59.2%에 달했다. 통계청은 장래가구추계를 통해 2030년 67.4%, 2040년 72.4%, 2050년 75.8%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2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52.4%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이 비율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30년 이후에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1~2인 가구의 비율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리한 대출로 아파트를 장만하다 보니 주요 재산으로 집밖에 가진 게 없는 ‘하우스푸어’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이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편에 맞게 아파트를 떠나 주택 등으로 이사하면 되지 않을까. 김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또는 평생을 아파트에 거주한 사람은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아파트족은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홀몸이 돼도 지금 거주하는 지역, 아파트의 일상을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에 최근 1기 신도시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 내 고독사 예방 교육 및 자문 요청이 늘어났다”고 말한다.
권명희 울산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아파트 거주 인구 비율이 늘어나는 만큼 경제력과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가구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앞으로 단지 내에 생활고를 겪는 세대, 1인 가구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인력이 추가로 필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 교수는 또 “자신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리는 게 창피해서,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게 불편해서 혼자 끙끙 앓는 입주민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이제 아파트 입주민은 본인 스스로 생활고로 인한 죽음, 고독사에 노출돼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상황을 주변에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캠페인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고경희 기자 ggoh@hapt.co.kr
